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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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나 하나의 욕심 때문에… 관습과 율법에 갇힌 하나님

입력 2019.03.17 00:00
조회수 892 댓글 0

[칼럼] 지도자들의 과한 욕심

 

 

▲이효준 장로.

 

 

관습(慣習)이란? 어학사전을 보면 ‘한 사회에서 역사적으로 굳어진 전통적 행동 양식이나 습관’을 말합니다. 오랜 기간 사람들의 생활에서 면면이 이어져 온 우리 사회의 규범이며, 도덕과 함께 그 사회를 구성해 가는 역사일 것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변하면서 관습 역시 조금씩 수정되거나 변해가고, 구성원들이 인정하는 한계에서 우리는 그것을 시대적 변화라고 생각하며 조금씩 알게 모르게 수용하며 나가고 있습니다.

 

율법(律法)이란? 종교적, 도덕적, 사회적 생활에 관하여 신의 이름으로 규정한 규범을 말합니다. 즉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인 ’십계명’을 받아 사람들에게 알린 것을 말합니다.

 

특히 유대인들은 예수가 일반 민중을 상대로 한 종교적 인격자라는 사실은 인정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하나님의 아들, 즉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으며, 유대교에서의 메시아 대망은 현재까지도 존속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아, 십자가 형틀에서 죽게 했던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 주변에는 ‘세리와 죄인들’이 몰려 다녔습니다. 여기서 ‘죄인들’은 바리새파 사람들의 기준에서 죄인으로 판단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려운 환경생활 탓에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세리와 죄인으로 분류를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잃은 양의 비유를 말씀하셨고,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비유로 말씀하셨으며, 잃었던 둘째 아들의 비유를 말씀하셔서 그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쉽게 비유로 설명을 해주셨던 것입니다(눅 15:1-32).

 

오늘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관습과 규정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자신들의 이익에 가두고 있습니다.

 

원래 법이란, 어떤 것이든 인간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법이 인간보다 우선일 수 없고, 인간 위에 군림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모든 율법과 계명은 근본 가르침이 사랑임을 기억하고 실행에 옮겨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법조문이나 관습, 그리고 세세한 규정에만 매달려 있다면,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처럼 모순된 삶을 살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사실 하나님의 계명인 율법은 하나님께서 모세와 계약을 맺은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특히 율법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십계명은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들의 삶 속에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가르침대로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는지를 요약해 놓은 것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이 율법이 사랑이신 하나님보다 삶의 겉모습만을 소중히 여기는 도구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사라지고 ‘사람의 법’이 그 자리를 대신하면서,

사람들을 속박하는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교회나 노회, 총회에도 많은 규정들이 있습니다. 교회에서 지켜야 할 그 많은 규정들은 사랑에서 비롯되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하여라!“

 

법이나 규정은 양심에서 자발적으로 우러나서 지켜져야 가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요즘 TV 방송 속 인기 프로그램인 ‘나는 자연인이다’에 나오는 주인공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나름대로의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었는데, 자연의 품 속에서 상처를 이겨내고 남은 인생은 행복을 찾아 살아가는 모습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주인공 자연인들의 공통점은 자연의 질서대로 욕심 없이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욕심이 닿지 않은 자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균형이 유지되는 곳입니다.

 

그런 자연의 품에서는 욕심으로 비롯된 세상의 상처를 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살아가는 이치도 깨달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신앙인의 참된 모습은 나의 욕심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질서와 균형이 깨어지지 않도록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제아무리 거칠어도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균형이 무너지지 않도록 하는 것, 그것이 신앙인의 자세이고 그런 곳이라야 하나님께서 편히 머무르실 곳, 곧 관습과 율법에서 탈피한 신앙인들의 공동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일예배에 참석해 말씀을 따라 행한다는 것 역시, 사랑에서 우러나온 행동이 아니라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우리가 하는 모든 신앙생활이 단순히 의무감 때문이라면 2019년 전, 하나님을 자신들의 틀 속에 가두어 버린 바리새파와 율법학자들과 다를 바 없습니다.

 

이를 기억하면서, 신실한 믿음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인이 되도록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현재 각 교회들마다 문제 없는 교회가 없습니다. 지도자들이 과한 욕심을 내려놓지 않는다면, 정말 큰일이 나고 말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나 하나의 욕심 때문에 수많은 신앙인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관습과 율법에 사로잡힌 바리새파와 무엇이 다르겠습니까?

 

오늘도 눈물로 가슴을 쓸어내리시는 주님의 외로운 마음을 헤아려, 주님께서 원하고 기다리시는 품 속으로 하루속히 회개하고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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