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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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기독교 창조론의 개혁 방안(3)

입력 2019.03.16 06:00
조회수 994 댓글 0

창세기의 ‘욤’과 ‘라키아’의 현대적 해석을 중심으로


허정윤 박사의 새창조론 쓰기

 


▲허정윤 박사(Ph. D. 역사신학, 케리그마신학연구원, djtelcome@naver.com) ⓒ크리스천투데이 DB

 

Ⅳ. 창조 둘째 날의 물의 나눔과 '라키아'(궁창)

 

창1:6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רָקִיעַ בְּתֹוךְ הַמָּיִם וִיהִי מַבְדִּיל בֵּין מַיִם לָמָיִם׃ [바요메르 엘로힘 예히 라키아 베토크 하마임, 비히 마브딜 벤 마임 라마임]. 이 구절은 '하나님이 이르시되 물 가운데에 궁창(라키아)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라 하시고'라고 번역되어 있다., 영어성경에서는 firmament로, 한글성경에서는 궁창(穹蒼)으로 번역한 히브리어 '라키아'는 현대인들에게 '문자 그대로'는 이해될 수 없는 말이다.

 

그렇다면 '라키아'는 무엇을 말하는가? 물과 물을 나눈 '라키아'의 어원은 '두드려 펴서 얇게 늘린 판'이라는 의미의 명사이다. 그러므로 '라키아'는 결국 실체적으로 '얇은 막 또는 판'이라고 이해된다. ''마브딜'이라는 말은 히브리어 나누다는 뜻의 '바달' 동사 앞에 알파벳 '멤' 을 붙여서 명사화한 말이다. 그러므로 이 구절을 '하나님이 물 가운데 '얇은 막'이 있으라고 말씀했다. 그러자 물과 물 사이에 나눠짐이 있었다'고 직역하면, 고대 히브리인들이 이해했던  '라키아'의 실체가 훨씬 분명하게 드러난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라키아'가 아직 물속에 있는 동안, 위의 물과 아래의 물을 나누고 있는 것처럼 보이게 된 상태를 서술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로 나뉘게 하시니 그대로 되었으므로'(창1:7), 다음 구절을 보자.

 

창1:8에서 '하나님은 '라키아'(궁창)를 하늘이라 부르셨다. 이 구절의 행간에는 읽어내야 할 것들이 많이 숨어있다. 먼저 모세의 위치와 시선의 방향을 파악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으면서 창조사건의 환상을 보고 있는 모세는 아직 물 위에 있었다. 모세는 공중에서 내려다보면서 물을 나눈 '라키아'를 찾고 있다가, 하나님이 '라키아'를 하늘이라고 부르는 말을 듣고, 위를 쳐다보았다. 하늘 색깔이 밑의 물 색깔과 같았으므로 모세는 그때 하나님이 '라키아'를 위로 들어 올려서 하늘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바로 이런 모세의 생각에 의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형성되었다.

 

고대 근동 지역의 신화들은 대개 가장 먼저 있었던 것이 물질이고, 그것이 물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이집트 신화에서는 신들과 땅도 물에서 생겨났다고 한다. 이와 같이 고대 근동 지역 사람들은 물을 만물의 근원으로 알고 있었다. 이집트 왕가에서 자란 모세도 이런 이집트 신화를 분명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집트뿐만 아니라, 서양철학의 비조로 불리는 밀레투스의 탈레스(Thales of Miletus, BC.640-BC.546)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이집트를 여행한 적이 있었다. 그때 탈레스가 나일강이 홍수로 범람한 뒤에 진흙 속에서 작은 벌레들이 생겨나오는 것을 보고, 작은 벌레들의 자연발생설과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고 주장했던 사실은 서양철학사에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모세도 창세기에서 하나님이 빛을 창조하시기 전에 물이 먼저 있었음을 서술하지만, 하나님이 물을 만들었다고 서술하지는 않았다. 모세는 물이 '처음에'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포함되어 있었고, 그 계획에 따라 물이 만들어졌다고 믿었을 것이다.

 

모세가 둘째 날의 하늘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서술하는 구절들을 읽는 현대인들은 큰 모순을 느끼게 된다. 이 구절에서 나타나는 문제는 모세가 하나님이 물을 나눈 '라키아'를 하늘로 규정했다고 서술함으로써 '라키아' 위의 물이 그대로 하늘 위에 올라갔다고 이해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모세는 뒤에 노아의 홍수 때에 하늘 위의 물이 '라키아'의 문을 통해 쏟아져 내렸다고 서술하고 있다.

 

그렇지만 현대인들에게 '라키아'가 하늘 위에 있었고, 그것에 물이 담겨져 있었다는 생각은 발상조차 할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라키아'는 실체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했었다는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소한 일반적인 수준의 과학적 상식을 가진 현대인이라면, 모순을 가지고 있는 창세기의 '라키아'에 대한 서술들을 그대로 믿을 수가 없다. 현대적인 의미에서 물은 H2O로 구성된 분자 덩어리이고, 지구에서 하늘은 대기권을 말한다. 그러므로 현대인들의 관점에서 '라키아'를 모세의 서술처럼 하늘 위의 실체로 믿고, 그 위에 물을 담고 있었다고 믿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기에서부터 창세기는 현대인들에게 과학적 사실과 모순되어 배척받게 된다. 오늘날에도 모순을 느끼지 않고 창세기의 서술을 그대로 믿는다고 말하는 일부 기독교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은 일반적인 수준의 현대적 과학 상식을 갖추지 못했거나, 스스로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이다. 현대인들은 현대과학과 첨단기술이 만들어낸 현대문명의 거대한 시스템과 제품들을 보면서 그것들을 만들어낸 현대과학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한다.

 

그러므로 현대과학에서 입증된 '과학적 사실'과 창세기의 서술이 모순된다면, 현대인들은 과학적 사실을 믿는 쪽을 선택하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는 이제 현대인들에게 성경의 서술이 하나님의 말씀이니 무조건 믿으라고 강요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모세의 서술에 영향을 받은 에스겔은 '라키아'를 가장 많이 언급했다. 에스겔은 '그 살아 있는 창조물의 머리들 위에 있는 라키아의 모습은 무서운 수정 색깔 같았으며 그들의 머리들 위로 펼쳐져 있더라'(겔 1:22)고 말했고, 또 '그룹들 머리 위 궁창(라키아)에 남보석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보좌의 형상 같더라'(겔 10:)고도 서술했다. 에스겔은 에스겔서 곳곳에서 '라키아'가 하나님의 보좌 밑에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 시편과 다니엘서에는 '라키아'를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시 150:1)과 '궁창의 광채'(단12:3)라고 서술되어 있다.

 

모세에 의하여 고대 히브리인들은 피조물들의 하늘 위에 '라키아'가 있고, 하나님을 보좌하는 천사들과 하나님은 그 위에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 영향은 그리스어 신약성경을 번역한 현대 히브리어 신약성경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셋째 하늘에 다녀온 사람을 말하고 있다(12:2). 데살로니가전서에서는 주의 재림을 영접하는 곳으로 쓴 '라키아'를 공중이라는 말로 번역했다(4:17).

 

신약성경에서 '라키아'를 가장 많이 쓰고 있는 요한계시록의 한글 번역문에서는 대개 공중(空中)이라는 말로 되어 있으나(계 8:13, 14:6, 19:17), 공기(空氣)로 번역된 곳도 있다(계 9:2). 오늘날에도 궁창이라는 말이 나오는 구절은 강의와 설교 등에 자주 인용된다. 그 대표적 구절은 '하늘(하샤마임)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하라키아)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2)이다.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읽으면 '라키아'에 대한 오해는 더 많이 나타나게 된다. 왜냐하면 '라키아'가 아닌 다른 말까지 궁창으로 번역하여 혼란을 가중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한글성경에서는 히브리어 שחקים(셰하킴)을 '궁창'으로 번역하고 있는데, '셰하킴'은 '잘게 부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שחק (샤하크)의 복수 명사형이다. 그런 뜻에서 먼지나 구름 등을 의미한다. '셰하킴'이 궁창으로 처음 번역된 구절은 신명기 33:26절 '여수룬이여 하나님  같은 자 없도다 그가 너를 도우시려고 하늘(샤마임)을 타시고 궁창(셰하킴)에서 위엄을 나타내시는도다'이다. 여기서 '셰하킴'은 구름으로 번역해야 맞다. 한글로 번역된 욥기, 시편, 잠언, 그리고 이사야와 예레미아의 예언서에는 '셰하킴'을 거의 모두 궁창으로 번역하고 있다.

 

'셰하킴'과 '라키아'를 비교하여 가장 잘 알 수 있는 구절은 תרקיע עמו לשחקים חזקים כראי מוצק׃ [타리키아 이모 라셰하킴 하나킴 키레이 모자크](욥 37:18)이다. 개역성경에서 '네가 그와 함께 하여 부은 거울 같은 견고한 궁창을 펼 수 있느냐'로 번역된 이 구절에는 '라키아'에 접두어 '타'를 붙여 의문형 동사 '타리키아'(펼 수 있느냐)가 있고, '셰하킴'의 목적격 명사 '라셰하킴'도 있다. 개역개정판에서는 '그대는 그를 도와 구름장들을 두들겨 넓게 만들어'라고 번역하여 '셰하킴'을 구름장들로 해석한 본문을 보여주고 있다. 이사야 40:22절 앞 구절은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시나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으니라'고 번역되어 있다. 이 구절에서 궁창은 חוג הארץ(후그 알레츠)이며 땅의 구(球)라는 뜻이다. 이 구절의 영어 번역을 보면, the circle of the earth로 번역하고 있다. 어떻게 이 말을 궁창이라고 번역하여 혼란을 초래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다.

 

한글성경의 실상이 이러함에도 문자적 해석을 강변하는 근본주의적 창조론자들은 모든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여 오히려 왜곡된 해석을 조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세가 하나님이 '라키아' 위에 물을 올려놓으셨다고 서술한 창세기에 의하여 고대 히브리인들은 하늘 위에 물이 있고, 하늘의 창이 열리면 비가 내리는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현대인들에게 납득될 수 있는 창조론은 진리의 기준을 사실성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현대의 창조론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론이 서술된 창세기의 창조 사건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과학적 사실'과 비교하면서 해석하는 것이어야 한다.

 

Ⅴ. 넷째 날의 '라키아'(궁창)와 광명들


1. 창 1:14절의 현대적 해석

 

וַיֹּאמֶר אֱלֹהִים יְהִי מְאֹרֹת בִּרְקִיעַ הַשָּׁמַיִם לְהַבְדִּיל בֵּין הַיֹּום וּבֵין הַלָּיְלָה וְהָיוּ לְאֹתֹת וּלְמֹועֲדִים וּלְיָמִים וְשָׁנִים׃ [바요메르 엘로힘 예히 메오르트 베레키아 하샤마임 레하베딜 벤 하욤 우벤 하라엘라 베하유 레오토트 우레모아딤 우레야멤 베샤님]. 이 구절에서 '메오르트'는 복수이므로 광명들이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그 광명들은 해와 달과 별들을 포함하고 있다.

 

모세의 넷째 날의 서술에 대해 살펴보면, 모세는 먼저 하나님이 '궁창에 광명(들)이 있으라'고 명령하시는 소리를 들었다. 모세는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았다. 모세는 하나님의 '있으라'는 명령어 외에 그 광명들의 처소를 '하늘의 궁창에'(베레키아 하샤마임) 정하신 일, 그 광명들이 주야를 나누신 일, 그리고 그 광명들이 운행하여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는 일도 말씀하신 것으로 서술했다.

 

이런 서술들은 하나님의 창조 명령어에 모세가 덧붙여 놓은 설명문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모세의 서술은 그가 이미 그 광명들이 '라키아'에서 날자와 사시와 연한을 이루고, 징조를 나타낸다고 인식하고 있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모세의 서술에 의하여 형성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은 세월이 가면서 점점 더 구체적인 모습을 드러낸다. 모세는 야곱의 입을 빌려 땅 밑에 음부(שאלה: 쉐올라)가 있다고 서술하고 있다(창 37:35). 그리고 신명기에서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모든 '하늘의 하늘'(신 10:14)을 서술함으로써 하늘들은 천사들이 거주하는 '라키아' 위의 하늘과 '라키아' 밑의 하늘을 포함하여 3개의 하늘로 구성되었다.

 

토라 이후의 구약성경에서 '라키아'의 가장 큰 변모는 평평하게 펼쳐졌던 '라키아 샤마임'이 욥기(22:14)에서 '(베)후그 샤마임'(וחוג שמים)처럼 '후그'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그 결과로 [참고 자료]와 같이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에서 '라키아'는 반구형(半球形)으로 그려지고 있다. 이사야 40:22에서 '후그 하아레츠'(חוג הארץ)가 나오는 것을 보면,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때부터 지구도 반구형으로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중국어 성경 주석에 있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세계관 그림

 

한글개역성경은 이것들을 각각 '궁창'과 '땅 위 궁창'으로 번역했다. 그러나 개정개역판은 욥기의 '후그 샤마임'은 '둥근 하늘'로 고쳤으나, 이사야의 '후그 하아레츠'는 '땅 위 궁창'으로 그대로 쓰고 있다. 지구의 모습은 높은 산들이 '라키아'를 떠받치는 기둥의 역할을 하고 있다. 높은 산들 사이에 땅 끝이 바다에 닿아 있다.

 

구약성경에 나타난 각 구절들에 의해 주석서들에서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대개 [참고 자료] 그림과 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있다. 현대인들 중에 [참고자료] 그림과 같이 서술한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문자 그대로'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미 현대우주론의 기본 개념이 거의 일반적 상식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그림에 관련하여 더 이상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보다는 창세기를 읽으면서 모순을 느끼는 현대인들에게 모세의 서술을 올바르게 설명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직접 하신 말씀은 '광명들이  있으라'는 명령어뿐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넷째 날의 나머지 시간을 지구에 살아갈 사람들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광명체들의 운행을 아주 정밀하게 미세조정(fine tuning)하는데 사용하셨다. 모세는 그동안 하늘을 바라보면서 해와 달과 별들에 관해 그가 보고 생각했던 소견과 기억에 따라 이 구절을 서술했던 것으로 보인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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