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장 16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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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맘 울리는 이야기

완전한 절망을 깨뜨리는 백신

조회 2,190|2018-11-21

노네임드

 



로마서 1장을 여러 번 반복해서 읽고 묵상하다가 
문득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가 떠올랐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해 전에 메르스 바이러스 때문에 
온 나라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지 않은가? 
그때 많은 사람이 <감기>나 <연가시>같은 
영화를 떠올리며 공포에 떨었다. 

 

 

그런데 이런 바이러스를 소재로 한 공포 영화는 

대부분 몇 가지 공통적인 패턴이 있다. 

첫째로 영화 초중반부까지는 사람들을 감염시키고 있는 

그 바이러스가 얼마나 무섭고 강력한 것인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다 보낸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아도 공기를 통해 전염된다거나 

한 번 감염되면 치사율이 거의 100퍼센트에 달하는 

무서운 병인 것을 강조하는 것이 첫 번째 패턴이다. 

 

또 하나의 패턴은 고칠 방도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계속 중거가고 있는데 치료할 백신이 없단다. 

그래서 그 과정에서 우왕좌왕하고 좌충우돌하다가 

점점 더 절망의 늪으로 빠져든다. 

 

영화 상영 내내 이 흐름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된다. 

그런가 하면 마지막 공통점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바이러스가 

창궐한 것치고 너무 싱겁게 끝난다는 것이다. 

 

보통 영화가 끝나기 한 10분 정도 남겨놓고 

갑자기 주인공이 그 불가능하다던 백신을 발견하여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치료하고는 끝난다. 

그래서 이런 영화를 보고 나면 때로는 허탈할 때가 있다. 

너무 맥없이 끝나버리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영화의 앞부분에서 그렇게까지 

바이러스의 독성과 잔혹성과 치사율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 바이러스의 강한 독성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 주인공이 발견하거나 개발하게될 

백신의 위력을 강조하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서 1장도 마찬가지다. 

바울이 로마서 1장에서 치명적인 죄를 열거하며 

"이제 어떤 희망도 없다. 완전히 망했다. 우리는 죽었다"

라고 선포한 것은 죄의 강력한 권세와 능력을 

강조하기 위한 게 아니다. 

 

그 뒤에 나타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그 복음의 백신이 강력한 죄악과 완전한 절망을 깨뜨리는 

강력한 능력이 된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함이란 것이다.  

 

 

아는 것보다 사는 것이 중요하다(이찬수 목사 저)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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