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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 에베소서 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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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의 선구자 진젠도르프


 

 

이번 5월 9일은 프로테스탄트 교회 역사와 선교의 역사에 매우 중요한 인물인 진젠도르프의 사망 260주기 입니다.

 

진젠도르프(Nicolaus Ludwig Graf von Zinzendorf)는 독일 헤른후터 파(혹은, 연합 형제단) 창시자입니다. 독일 드레스덴(Dresden)의 작센(Saxon) 선제후 고관 집에서 출생했습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경건한 외할머니 손에서 경건 훈련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엄격한 경건주의 학교인 할레의 페다고기움(Pedagogium)에서 중등 교육을 받은 그는 1716-1719년에 비텐베르그에서 법률을 공부하고 1721년 드레스덴 선제후의 사법 자문위원이 되었습니다.

 

1722년 외할머니로부터 베르텔스도르프(Bertelsdorf)의 넓은 땅을 상속받았는데, 그는 피난길에 나선 모라비안 교도들에게 정착지로 허락해 주었습니다. 이곳은 1726년에 이르러서는 300여 명의 모라비안 교도들이 정착하는 '헤른후트'(Herrnhut, '주님의 보호'란 뜻. 후에 독일 지명이 됨)라 불리는 정착촌으로 변모하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이들을 통해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자각하고 이들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헤른후트를 국내외에 선교할 그리스도의 군병을 양성하는 훈련소로 삼았다. 진젠도르프는 청년 남녀를 분리하여 수도사와 같이 엄격하고 철저하게 훈련시켰습니다.

 

그 후 1731년 덴마크 왕 크리스천 6세(Christian Ⅵ, 1730-1740년) 대관식에 참석했다가 덴마크 령인 서인도와 그린랜드 주민을 만난 진젠도르프는 귀국 후 선교열에 불타는 헤른후트의 모라비안 교도 중 레온하르트 도버와 다비드 니쉬만을 서인도 제도 선교사로(1732년), 크리스찬 다비드를 그린랜드에 파송했습니다(1733년). 이 일은 세계 선교에 무지하던 당시에 이루어진 일로서, 이들은 훗날 최초의 프로테스탄트 선교사들로 불렸고 이는 현대 선교의 아버지라 불리는 윌리엄 캐리보다 60년이나 앞선 때의 일이었습니다.

 

2년 후인 1735년 미국 조지아에 고트리브 슈팡겐베르그(Gottlieb Spangenberg, 1704-1792년)를 선교사로 파송했습니다. 모라비아 교도들은 누구라도 구두 한 켤레만 준비되면 당장이라도 선교를 떠나겠다고 헌신하는 자들로 가득차 있었습니다. 그러나 작센 정부와 사이가 좋지 못했던 진젠도르프는 작센에서 추방되어 서부 독일로 갔고, 다시 베를린으로 갔습니다. 그는 이를 선교의 좋은 기회로 삼고 서인도, 런던, 미국 등 여러 선교지들을 둘러보았습니다.

 

1741년 12월부터 1743년 사이에는 미국 조지아, 펜실베니아 등지에서 원주민 선교를 위해 8개의 학교를 세우고 모라비아 운동 본부도 설립했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통해 모라비아 교회는 프러시아(1742년), 영국(1749년) 등에서 훌륭한 교회로 인정받게 되었고, 작센 정부도 진젠도로프의 추방령을 취소하고 귀환을 종용했습니다.

 

모든 재산을 선교에 사용하여 거의 파산 상태에서 육신마저 쇠잔해진 진젠도르프는 말년에 영국에 거주하다 1760년 5월 9일 60세를 2주 앞두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는 28년간의 활동을 통해 226명의 선교사를 파송했고, 19세기에는 유럽에 15개의 선교 기관이 설립되었다. 모라비아 교회는 20세기 초반까지 세계 14개 나라에 3,000여 명의 선교사들을 파송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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